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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대 대통령 존 애덤스

by 미래이장 2023. 11. 6.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뒤를 이어 존 애덤스가 2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이전에는 변호사로서 굉장한 독설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학식이 깊었고 사려도 깊었기 때문에 정치철학자로 많이 기억되는데요 신념이 강하고 청렴했던 존 애덤스  2대 대통령의 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I.존 애덤스의 정치입문과 행적

존 애덤스는 1735년 10월 30일 메사수세츠주의 브레인트리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버드 대학교를 1755년에 졸업하고 변호사로 사회에 진출합니다. 당시 영국의 고압적인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며 1,2차 대륙회의가 있었는데요, 존 애덤스는 대표로 참가하여 미국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냈습니다. 미국의 독립전쟁 중에는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외교사절로 다녀오기도 했으며 1785년에는 영국에서 주영공사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독립선언문을 작성할 때 참여하기도 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기도 했지만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지 워싱턴에 뒤져 2등을 했습니다. 당시 2등 한 후보에게는 부통령직을 주었는데요 그래서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행정부에서 부통령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존 애덤스는 추진력, 지성, 명예욕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두 번의 부통령직은 매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에게 "나의 조국은 인간이 상상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일을 나에게 맡겼어"라며 그가 맡은 부통령직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이후 그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에는 미국은 영불전쟁의 여진이 남아있을 때였습니다. 공해상에서 미국 상선의 운항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정파 간 다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애덤스는 당시 프랑스에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면서 세명의 사전단을 파견하기도 했지만 프랑스는 1788년 체결한 미불간 조약의 폐기를 조건으로 엄청난 뇌물과 차관을 요구하며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애덤스는 이 사건을 의회에 보고하면서  아주 심한 모멸감을 느껴 프랑스 측 관계자들의 이름조차 적지 않고 X, Y, Z로 표기하여 보고했습니다. (XYZ 사건)

 

애덤스는 국민적 공분을 부추겼고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의회에서는 세척의 군함을 포함한 선박을 건조하고  예비병력 동원 안을 승인받아 미국 내에 잠입해 있던 외국인 첩자들을 축출하면서 친공화파 언론인들의 비판을 잠재우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또한 애덤스는 프랑스에 선전포고 없이 교전을 하게 되었고 1800년이 되어서야 미국의 상선들은 해상로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 당시 프랑스에 비해 국력이 열세였지만 미군은 프랑스 해군과의 교전을 통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항상 그렇듯 전쟁이 길어지면 평화를 원하게 되고 전쟁에 대한 지지가 점차 힘을 잃게 됩니다. 이때 마침 프랑스로부터 미국 특사를 받아들이겠다는 정중한 의사표현이 도달하였고 오랜 시간 협상을 통해 마침내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애덤스가 프랑스로 보낸 평화사절단에 대해 해밀턴주의자들은 반대를 심하게 했고 애덤스의 연방파는 분열되었고 반대로 제퍼슨의 공화당은 결집되었습니다.  결국 1800년 대선에서 애덤스는 제퍼슨에게 패배했습니다. 애덤스와 제퍼슨은 사이가 아주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애덤스는 제퍼슨의 임기 시작 전, 임기 종료 바로 전날 연방대법원 판사들을 전부 연방주의자로 바꿔버리면서 마베리 대 메디슨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장은 애덤스와 친밀했던 존마샬이 맡았기 때문에 제퍼슨은 임기 내내 사법부의 견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엄정하게 중립성을 지키던 미국 법원의 전통이 세워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II. 존 애덤스의 은퇴

존 애덤스는 은퇴 후 퀸시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여생을 보냅니다.  평생의 정적이었던 제퍼슨과는 말도 섞기 싫어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지만 말년에는 화해도 하고 서신도 자주 교환하게 됩니다.  그 둘은 우연히도 1826년 7월 4일 미국 독립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세상을 떠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애덤스는 토마스 제퍼슨에게 "토마스 제퍼슨은 아직 살아있..."라며 끝맺지 못한 유언을 남겼고 제퍼슨은 몇 시간 전에 세상을 뜬 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