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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의 역사 ( 5대,6대)

by 미래이장 2023. 11. 8.

오늘은 미국의 5대 대통령 제임르 먼로와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의 업적과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I. 5대 대통령 James Monroe (1817-1825)

제임스 먼로는 미국의 5대 대통령으로서 1817년 취임하여 1825년까지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수행하였습니다. 먼로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이전 행정부에서 있었던 정치적 분열을 치유하는데 중점을 두고 국가 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공동의 비전을 세우고 국가를 통합하기 위해 정파 간 화합과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823년 먼로 독트린을 공식화했습니다. 이 독트린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유럽 식민지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즉, 미국을 유럽의 식민지화하려는 어떠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할 것임을 표방했고 미국 또한 유럽문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 독트린 선언은 향후 미국 외교정책의 초석이 되었으며 미국이 서반구에서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대통령처럼 제임스 먼로 역시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가져 옮으로써 미국의 영토를 넓혔습니다. 플로리다를 두고 스페인과 협상을 하여 1819년 아담스-오니스 조약을 맺으면서 스페인과의 국경 분쟁을 끝내고 플로리다를 미국 영토로 편입할 수 있었습니다. 플로리다의 미국 영토 편입은 미국의 영토를 확장했다는 단순한 의미뿐 아니라 미국이 남동부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면서 무역에서도 큰 이점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1820년 미주리 타협으로 노예주와 자유주간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주리 타협안은 미주리는 노예주로 하고 매사추세츠주의 일부인 메인지방을 자유주로 하며 북위 36도 30분 이북에서는 노예제도를 금지하는  안이었습니다. 이 타협으로 인해 지역적 긴장감이 완화되었고 미합중국 체제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먼로는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서부를 확장하기 위해 도로, 교량, 운하와 같은 인프라에 투자를 하고자 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연방기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미국의 미래 인프라개발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었고 플로리다를 확보하고 루이지애나를 매입함으로써 서쪽 국경을 확장시켜 광대한 미국 영토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먼로의 경제정책으로는 경제 자급률을 높이고 국내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미국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높은 관세와 국립 은행 및 내부 개선 같은 조치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이 제임르 먼로의 재임기간 동안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미국 시스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미래 경제 정책의 토개가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임스 먼로의 재임기간 동안 미국은 성장했고 안정기에 있었으며 세계 강대국으로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II. 6대 대통령 John Quincy Adams (1825-1829)

존퀸시 애덤스는 1825년부터 1829년까지  미국 6대 대통령으로서 단임했습니다. 그는 매우 총명하고 경험이 많은 정치가였습니다.  제임스 먼로 행정부에서 외교관, 상원의원, 국무장관의 직을 수행했으며 외교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연방 정부가 상업을 장려하고 국가를 연결하기 위해 도로, 교량과 같은 기반 인프라에 투자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많은 반대에 부딪쳤지만 애덤스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국가의 성장과 경제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1819년 스페인과 체결한 애덤스-오니스 조약으로 스페인과의 오랜 국경 분쟁을 해결하고 플로리다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여 서쪽으로 국경을 확장하여 미국의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또한 애덤스는 라틴 아메리카에 신생독립국가들의  결정을 지지하고 유럽의 열강들이 라틴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독립에 대한 그의 지지는 먼로 독트린의 원칙과 닮아있었고 미래 미국 외교 정책을 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애덤스는 국립대학과 국립 천문대의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비록 국립대 설립이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그의 의지는 미래 교육계획을 위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또한 예술과 문화를 지원하기 위해 국립 미술관의 설립을 지지하여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설립이라는 결과물을 낳았습니다. 

 

외교적으로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1812년 전쟁을 끝내고 1814년에 헨트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애덤스는 영국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1817년 러시-바고 협정의 서명을 이끌어내며 오대호 지역을 비무장화하고 미영 사이에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애덤스는 "혐오의 관세"로 알려진 1828년 관세에 서명했습니다. 이 관세는 논란이 많았지만  미국 제조업을 촉진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애덤스는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원주민들의 권리를 옹호하여 그들이 조상의 땅에서 쫓겨나는 것에 반대하고 그들의 자치권과 그들의 영토를 존중해주려 했습니다.  존 퀸시 애덤스는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외교적 역량을 강화했고, 라틴 아메리카 독립을 지지했으며 미국의 주권과 무역에 대해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